반응형 (숙종의 장모) 풍창부부인 풍양조씨 풍창부부인 풍양조씨 방형의 분묘 앞 좌측에는 묘비, 중앙에는 혼유석·상석·향로석, 그리고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 등의 석물이 각기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영조 17년(1741)에 건립한 것으로 비문의 음기는 외손인 이재짓고, 글씨는 해서체로서 손자 민우수가 썼다. 묘비는 화강암의 옥개석과 장방형의 대석을 갖추 었고, 오석의 비신은 높이 178㎝, 폭 78㎝, 두께 28.5㎝의 규모이다. 풍창부부인 조씨(1659-1741)는 조선 숙종비 (인현왕후)의 친정어머니이며,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아내 이다. 본관은 풍양이다. 효종 10년(1659) 성균관 생원 조귀중과 청주한씨 사이에서 태어나 18세인 숙종 2년(1676) 민유중에게 출가했고, 딸이 숙종의 계비로 간택되자 외명부 정 1품인 부부인의 작위를 받았다.. 2012. 9. 19. (숙종의 국구) 여양부원군 민유중 [문정공], 해풍부부인 덕수이씨, 은성부부인 은진송씨 여양부원군 문정공 둔촌 민유중 1630년(인조 8)∼1687년(숙종 1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지숙(持叔), 호는 둔촌(屯村). 숙종의 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아버지이다. 강원도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의 막내아들이며, 모친은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딸이다. 대사헌 민기중(閔蓍重)과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의 동생이다. 1649년(효종 즉위) 진사가 되고, 165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을 거쳐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이어 대교‧봉교‧세자시강원설서‧성균관전적을 거쳐 사헌부감찰‧예조좌랑‧병조좌랑을 지내다가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다. 상을 마친 뒤 사간원정언과 세자시강원사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1656년 병조정랑이 되었다. 그뒤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 등을 지내면서 .. 2012. 9. 19. (세종의 장모) 삼한국대부인 순흥안씨 삼한국대부인 순흥안씨 조선 제4대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의 모친이자 영의정을 지낸 안효공 심온(? - 1418)의 배위인 순흥안씨의 묘이다. 호석을 두른 봉분이 설치되어 있고, 묘 앞 중앙에는 글씨가 마멸된 원래의 대리석 묘비와 1910년 새로 건립한 묘비가 있고, 그 앞에 상석 향로석 장명 등, 문인석이 좌우에 갖추어져 있다. 특히 묘비와 상석 주위는 경사지게 장대석으로 사다리형 계단을 조성하여 아늑하고 품위있는 제단이 되게 했다. 장명등은 방형 기단부 위에 방형의 화창을 가진 화사면이 급경사를 이룬 옥개를 얹었다. 청송심씨(靑松沈氏)인 안효공(安孝公)에게 출가하여 장녀 소헌왕후를 비롯한 6명의 딸과 아들 3형제의 모두 9남매를 출산했고, 세종대왕의 부부인(府夫人)으로서 남편에 대한 내조와 자녀교육에 헌.. 2012. 9. 18. (숙종의 국구) 광성부원군 김만기 [문충공], 서원부부인 청주한씨 광성부원군 문충공 정관재 김만기 본관은 광산.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정관재(靜觀齋). 증조부는 형조참판을 지낸 장생(長生)이며, 아버지는 생원 익겸(益兼)이다. 인경왕후의 아버지인 숙부 익희(益熙)에게 수학하고,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 되었다. 1652년(효종 3)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별시문과에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고 수찬·정언·교리 등을 지냈다. 1659년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문제로 논란이 일어났을 때 기년설(朞年說)을 주장했으며, 3년설을 제기한 남인 윤선도(尹善道)를 공격했다(→ 기해예송). 1671년(현종 12) 딸이 세자빈이 되었고, 1673년 영릉(寧陵)을 옮길 때 산릉도감(山陵都監)의 당상관이 되었으며, 그뒤 병조판서를 지냈다. 1674년 숙종이.. 2012. 9. 18. (문신) 복경 민승호[충정공] 충정공 복경 민승호 1830년(순조 30)∼1874년(고종 11). 조선 말기의 척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복경(復卿). 민치구(閔致久)의 아들로, 민치록(閔致祿)에게 입양되었으며,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오빠이다.1864년(고종 1)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66년 여동생이 왕비로 책봉되자 중용되어 그해 8월 이조참의, 1867년 1월 호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872년 형조판서가 되고, 1873년 병조판서에 올랐다.이무렵 서계(書契) 문제로 일본 메이지정부(明治政府)의 국교요청이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국서수리거부정책으로 나타나자, 이에 반대하여 ‘국서를 거절함으로써 일본의 분노를 사게 된다면 반드시 후환이 있음은 물론이요, 양국이 상호 제휴하여 문명개화할 수도 없을 것’임을 통찰한 나머지 이.. 2012. 9. 17. (문신) 북헌 김춘택[충문공], 정경부인 완산이씨 충문공 북헌 김춘택 본관은 광산. 자는 백우(伯雨), 호는 북헌(北軒). 숙종의 장인인 만기(萬基)의 손자이며, 호조판서 진구(鎭龜)의 아들이다. 서인 노론의 중심가문에 속하여,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이후 남인이 정권을 잡았을 때 여러 번 투옥·유배되었다. 1694년 재물을 써서 궁중에 내통하여 폐비 민씨를 복위시키려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으나,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축출되자 풀려났다. 서인이 노론·소론으로 갈라지자 노론에 속하여 1701년 소론의 탄핵으로 부안에 유배되었다. 1706년에는 희빈 장씨의 소생인 세자(뒤의 경종)를 모해하려 한다는 혐의를 받고 제주에 안치되었다. 시와 글씨에 뛰어났고, 문장이 유창하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한문으로 번역했다. 저서에 〈북헌집〉과.. 2012. 9. 15. 이전 1 ··· 118 119 120 121 122 123 124 ··· 130 다음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