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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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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광해군묘 - 광해군, 문성군부인 문화류씨 [사적 제363호] 광해군(光海君), 문성군부인(文城郡夫人) 광해군(光海君, 1575년 음력 4월 25일~1641년 음력 7월 1일)은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휘는 혼(琿). 선조(宣祖)와 공빈 김씨(恭嬪 金氏)의 둘째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로 책봉되었고, 함경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군수품과 의병을 직접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 승리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인정은커녕 견제와 냉대를 당해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우여곡절 끝에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등용하는 듯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며, 후금과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실리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왕.. 2012. 11. 18.
(문신) 선원 김상용 [문충공], 정경부인 안동권씨 문충공 선원 김상용 1561년(명종 16)∼1637년(인조 15). 조선 인조 때의 상신(相臣)이며, 병자호란 때의 순절인(殉節人). 본관은 안동. 자는 경택(景擇), 호는 선원(仙源)·풍계(楓溪)·계옹(溪翁). 서울 출신.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 극효(克孝)의 아들이며, 좌의정 상헌(尙憲)의 형, 좌의정 정유길(鄭惟吉)의 외손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15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화 선원촌(江華仙源村: 지금의 江華郡 仙源面 冷井里)으로 피난했다가 양호체찰사(兩湖體察使) 정철(鄭澈)의 종사관이 되어 왜군토벌과 명나라군사 접대에 공을 세움으로써 1598년 승지에 발탁되고, 그뒤 왕의 측근에서 전란중의 .. 2012. 11. 11.
(대중가수) 배호 [배신웅] 대중가수 배호 1942. 4. 24 중국 산둥 성[山東 省]~ 1971. 11. 7 서울. 본명은 배신웅(裵信雄). 광복군 제3지대에서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 배국민과 어머니 김금순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해방 후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에서 살다가 1955년 아버지가 죽자 부산으로 내려가 이모가 운영하는 모자원에서 생활하면서 부산 삼성중학교 2학년 1학기를 수료했다. 1956년 8월 음악을 하기 위해 혼자 상경하여 외삼촌인 김광빈에게 드럼을 배운 지 1년 만에 통달하고, 김광빈악단에서 드럼 연주를 하였다. 1963년 김광빈 악단 및 김인배 악단에서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 즈음 예명을 배호로 하고, 김광빈이 작곡하고 편곡한 〈굿바이〉와 〈사랑의 화살〉을 발표하며 가수로 .. 2012. 11. 11.
(문신) 운미 민영익, 정경부인 광산김씨 운미 민영익 조선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우홍(遇鴻) 또는 자상(子相)이고, 호는 운미(芸楣)·죽미(竹楣)·원정(園丁)·천심죽재(千尋竹齋)이며, 사호(賜號)는 예정(禮庭)이다. 민태호(閔台鎬)의 아들로 1874년(고종 11) 폭탄 테러에 의해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양오빠 민승호(閔昇鎬)와 그의 아들이 죽자 양자로 입양되어 죽동궁(竹洞宮)의 주인으로서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 노릇을 하였다. 187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조선 역사상 최연소인 19살의 나이로 정3품 당상관인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1881년 경리통리기무아문 군무사당상, 별기군의 교련소당상으로 별기군의 실질적인 운영 책임을 맡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대인 별기군은 급료나 피복 지급 등 모든 면에서 구식 군대보다 대우가 월.. 2012. 11. 9.
(대중가수) 차중락 대중가수 차중락 차중락 (車重樂, 1941~1968.11.10 ) 요절가수 차중락은 잘생긴 얼굴, 미스터 코리아 2위로 선정될 만큼 건장한 몸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빼다박은 뛰어난 모창으로 60년대 말 젊은 여성들에게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미8군에서는 '코리언 엘비스'라는 애칭으로 불렸을 만큼 외국과 한국의 정서를 적절하게 퓨전한 감정처리가 독특했던 저음의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서울 신당동 토박이로 전문학교 마라톤선수 출신으로 토건업과 인쇄소를 경영했던 부친 차준달과 경기여고 단거리선수 출신인 모친 안소순의 8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난 차중락과 함께 11명의 형제자매는 부모의 기질을 이어받아 예체능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첫째는 역도선수, 둘째는 경복고 밴드반장과 연대.. 2012. 11. 4.
(소설가) 김말봉 소설가 김말봉 김말봉 ( 金末峰, 1901. 4. 3~1961. 2. 9 ) 여류소설가. 본명은 말봉(末鳳)이다. 부산출생.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를 3년 수료한 뒤 서울에 와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를 졸업하였다. 그뒤 황해도 재령(載寧)의 명신학교(明信學校)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경도(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27년 귀국하여 중외일보 기자로 취직, 전상범(全尙範)과 결혼하였다. 이 무렵까지 문학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기자로서 쓴 탐방기나 수필이 주위의 호평을 받자, 1932년 보옥(步玉)이라는 이름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망명녀 亡命女〉라는 단편소설로 응모, 당선 됨 으로써 문단에 .. 201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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