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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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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묘14

(안동김씨 시조) 안동김씨 시조 태사공 김선평 안동김씨 시조 태사공 김선평 安東金의 始祖 太師公은 신라종성(宗姓:왕실의 성) 金이며 휘(諱:이름) 선평(宣平)이다. 신라 효공왕 5년 흥덕궁에서 태어나셨고, 공은 봉의 눈과 용의 수염, 별의 정기와 호랑이의 위엄을 갖추었다. 춘추 26세에 고창(古昌: 안동)의 성주(城主)가 되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지리상 중요 성(城)에 26세의 젊은 성주였다면 필시 진골(眞骨)이었을 것이니 효공왕의 왕자(王子)로 추정된다. 신라말 경애왕때 고창군(古昌郡: 안동)의 성주(城主)로 서기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자, 930년(경순왕 4)에 권행(權幸:안동권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안동장 시조)과 함께 향병(鄕兵)을 모으고 왕건을 도와 고창(안동)군에서 후백제(後百濟)의 견훤군(.. 2014. 11. 22.
(안동권씨 시조) 안동권씨 시조 태사공 권행 안동권씨 시조 태사공 권행 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원래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성씨는 김씨였다. 후삼국시대이던 서기 930년 왕건의 고려군이 견훤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고려는 이 전투로 전세에 큰 이득을 보게 되었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식읍(食邑)으로 내림과 동시에 권(權)씨 성을 내린 것이 안동 권씨의 시작이다. 권행, 김선평, 장정필 이 세 사람은 고려 창업의 공으로 ‘삼한벽상아부공신 삼중대광태사’(三韓壁上亞父功臣 三重大匡太師)를 제수받았으며 고려 성종 2년(서기 983년) 이 세 명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안동시 북문동에 삼태사묘(三太師廟)를 세웠다. 2014. 11. 22.
(문신) 정민공 서필 정민공 서필 서필은 이천(利川)사람이니 성품이 통민(通敏)하여 처음 도필(刀筆)로 나아가 여러 벼슬을 거쳐 대광(大匡) 내의령(內議令)에 이르렀다. 광종이 재상 왕함민, 황보광겸 및 서필에게 금주기(金酒器)를 하사하니 서필이 홀로 받지 않고 말하기를 “신이 잘못 재상에 있어 이미 총애를 입게 되었는데 다시 금기(金器)를 하사하니 더욱 황송하고 분에 넘치는 일입니다. 또한 의복과 용기(用器)는 등쇠(等衰)를 밝혀야 하고 사치와 검약은 이란(理亂)에 관한 일이니 신이 금기(金器)를 쓰면 임금은 장차 무엇을 쓰시나이까.”라고 하니 광종이 이르기를, “경이 능히 보물로써 보물을 삼지 않으니 나는 마땅히 경의 말로써 보물을 삼을 것이라.”고 하였다. 일찍이 나아가 알현하여 말하기를, “바라건대 주상이 공 없는 사.. 2012. 7. 8.
(문신) 복천 서희 [장위공] 장위공 서희 서희(942~998)는 고려 성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이천, 자는 광윤(光允), 호는 복천(福川)이다. 조부(祖父)인 서신일 때까지 이천지방에 토착하던 호족이었으나, 아버지 서필에 이어서 그도 재상의 지위에 오름으로써 중앙에 정치적 터전을 마련했다. 아들인 서눌이 문하시중이 되고 손녀가 현종(顯宗)의 비(妃)가 되자 유력한 외척가문의 하나로 성장했다. 960년(광종 11) 과거급제 후 벼슬에 나가 광평원외랑을 지내고 983년(성종 2)에 군정의 책임을 맡은 병부어사가 됐다. 이후, 내사시랑평장사를 거쳐 태보·내사령의 최고직에 이르렀다. 993년(성종 12) 대군을 이끌고 침입한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외교로 담판하여 이를 물리친 후, 994년부터 3년간 거란이 양해한 대로 압록강 동쪽의 여진족.. 201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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