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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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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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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곡당, 지국와
(문신, 서울 관악구) 자미 이거, 숙부인 임피진씨 -덕수이씨-
이거(李琚, ? ~ 1502년 2월)는 조선 중기의 학자, 문신으로, 왕세자 시절 연산군의 스승이었으며 춘추관편수관으로 《성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영중추부사 이변(李邊)의 손자이며 임진왜란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의 증조부이다. 과거 급제 후 연산군 즉위초 정3품 당하관인 통훈대부와 당상관인 통정대부로 승진했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字)는 자미(子美)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480년(성종 11년) 식년시 문과에 을과 6등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1482년(성종 13년) 경연청 설경, 1483년(성종 14년) 홍문관 박사, 경연사경, 1484년(성종 15년) 경연검토관, 홍문관수찬을 지냈다. 1484년 암행어사로 나가 경기도를 시찰, 과천현감 최급(崔伋)을 오리(汚吏)로 잡아 봉고파..
2022. 7. 22.
(문신, 우의정, 경기 남양주시) 동강 효헌공 조상우, 정경부인 전주이씨 -풍양조씨-
조선후기 내의원제조, 예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직(子直), 호는 동강(東岡). 조기(趙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희보(趙希輔)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조형(趙珩)이다. 어머니는 목장흠(睦長欽)의 딸이다. 이경석(李景奭)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657년(효종 8) 사마시에 합격한 뒤 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이 되었다. 1672년(현종 13) 익위사세마에 임명되었으며, 숙종이 즉위한 뒤 사축서별제(司畜署別提)가 되었다가 연천현감으로 나갔다. 그러나 1675년(숙종 1) 송준길이 추삭될 때 동문 홍득우(洪得禹) 등과 반대하는 소를 올려 남평(南平)에 유배당하였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호조좌랑을 거쳐 태인현감으로 나갔다. 1682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684..
2022. 7. 20.
(문신, 강원 원주시) 묵공옹 정언황, 정부인 황성조씨 -나주정(丁)씨-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휘(仲徽) 또는 위수(渭叟), 호는 묵공옹(默拱翁). 정응두(丁應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윤복(丁胤福)이고, 아버지는 사성(司成) 정호관(丁好寬)이다. 어머니는 선략장군(宣略將軍) 이광립(李光立)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에 진사가 되고, 1628년(인조 6)에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했으나, 아버지가 광해군 때 대관(臺官)으로서 영창대군의 출치(黜置)에 관여한 이유로 관로가 순조롭지 못하였다. 그러나 1634년에 신계현령을 비롯하여, 1642년 장령, 1646년 우부승지, 1647년 병조참지를 역임하고 서장관(書狀官)으로 심양(瀋陽)에 다녀왔다. 1648년에는 강빈옥사(姜嬪獄事)로 제주도에 유배된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세 아들을 구제하려고 상소했으나 묵살되자, 스스..
2022. 7. 15.
(좌의정, 전북 완주군) 완성부원군 언규 황헌, 정경부인 전의이씨, 정경부인 전주최씨 -우주황씨-
본관은 우주(紆州). 자는 언규(彦規). 황진손(黃振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인(黃璘)이고, 아버지는 황윤조(黃胤祖)이다. 1521년(중종 16) 별시 문과에 급제, 권신 남곤(南袞)의 추천으로 정자가 되고, 정언·사예·집의·사간·장령을 거쳐, 이조정랑에 등을 역임하였다. 1537년 대사간, 1543년 이조판서, 1548년(명종 3) 우의정에 올라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에 책록되었는데, 이는 명종 즉위년에 상을 당하여 집에 있었으므로 공신에 책록되지 못하였는데 재상에 올라 스스로 김안로(金安老)를 탄핵하였다는 공을 내세워 훈적(勳籍)에 추록된 것이다. 이듬해 좌의정이 되고, 이 해 윤원형(尹元衡)의 심복인 부제학 진복창(陳復昌)에 의하여 공리(功利)를 탐하고 죄인을 함부로 죽였다는 탄핵을 받고 삭..
2022. 7. 3.
(영의정, 좌의정, 충남 부여군) 풍원부원군 충효공 귀록 조현명, 정경부인 태원윤씨, 정경부인 안동김씨 -풍양조씨-
조선후기 경상도관찰사,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치회(稚晦), 호는 귀록(歸鹿)·녹옹(鹿翁). 조형(趙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상정(趙相鼎)이고, 아버지는 도사(都事) 조인수(趙仁壽)이다. 어머니는 김만균(金萬均)의 딸이다. 1713년 (숙종 39) 진사가 되고 171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을 거쳐 1721년(경종 1) 연잉군(延礽君)이 왕세제로 책봉되자 겸설서(兼說書)로서 세제보호론을 주창, 소론의 핍박으로 곤경에 처해 있던 왕세제 보호에 힘썼다. 영조 즉위 후 용강현령, 지평·교리를 역임하고 1728년(영조 4)이인좌(李麟佐)의 난이 발생하자 사로도순무사(四路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종군하였다. 난이 진압된 뒤 그 공으로 분무공신(奮..
2022.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