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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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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심씨18

(공신) 진양부원군 대민공 완역재 강석덕, 정경부인 청송심씨 -진주강씨- 진양부원군 대민공 완역재 강석덕 진주인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문신(文臣)으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자명(子明), 호(號)는 완역재(玩易齋)이다. 회백(淮伯)의 아들이며, 세종(世宗)의 국구(國舅)로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심온(沈溫)의 사위이니 세종(世宗)과는 동서(同棲)간이 된다. 이 가문(家門)은 이러한 혼인(婚姻) 관계 등으로 조선(朝鮮) 초기의 대표적인 명문가(名文家)가 되었다. 즉 형(兄) 우덕(友德)의 아들 맹경(孟卿)은 영의정(領議政)에 올랐고, 아들인 희안(希顔)·희맹(希孟)은 모두 문과(文科)에 올라 이름을 떨쳤으며, 손자(孫子)인 구손(龜孫)은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태종(太宗) 초에 음사(蔭仕)로 계성전직이 되었으며, 세종(世宗) 초에 지양근군사로 발탁(拔擢)되어 .. 2016. 8. 6.
(문신) 청양군 손암 심의겸, 정부인 청주한씨 -청송심씨- 청양군 손암 심의겸 1535년(중종 30)∼1587년(선조 2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방숙(方叔), 호는 손암(巽菴)·간암(艮菴)·황재(黃齋). 할아버지는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이고, 아버지는 심강(沈鋼)이며, 심홍(沈泓)에게 입양되었다. 명종의 비인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동생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5년(명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562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청요직에 임명되었다. 1563년 사림들이 이량(李樑)으로부터 화를 입게 되자 외숙인 그를 탄핵하며 권세와 간계를 배척하는 등 사림의 입장을 옹호하는 데 힘썼으나 도리어 왕의 외척으로 일을 꾸민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1564년 지평·검상·사인을 거쳐 이듬해 사간·부응교 등을 역임하고, 15.. 2016. 2. 2.
(문신) 당녕군 화옹 홍서익, 정경부인 청송심씨 -남양홍씨- 당녕군 화옹 홍서익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화옹(禾翁), 자는 익지(翼之)이며, 이조판서를 지낸 홍성민(洪聖民)의 아들이다.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1등급인 갑과로 급제하고 조상의 훈음(薰蔭)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품계에 오른 뒤 수안군수·옥천군수·선산군수를 지냈다. 1617년(광해군 9) 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가 되었으나 대북파의 전횡 등으로 정치가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자 외직으로 나아가기를 자청하여 가평군수로 부임하였다. 1618년(광해군 18) 이이첨(李爾瞻) 등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생모인 인목대비(仁穆大妃)에 대한 폐모론(廢母論)을 제기하자 사직한 뒤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출처] 홍서익 [洪瑞翼 ] | 네이버 백과사전 2016. 1. 26.
(13) 강릉(康陵) - 명종(明宗), 인순왕후(仁順王后) 청송심씨 강릉(康陵) 명종(明宗), 인순왕후(仁順王后) 청송심씨 - 명종은 중종의 둘째 아들로 1534년(중종 29) 5월 22일 태어났다. 1539년(중종 34) 12월 21일 경원대군에 봉해졌으며, 1542년(중종 37) 11월 심강의 딸과 결혼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545년 7월 6일 인종의 뒤를 이어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탓에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을사사화, 양재역 벽서 사건 등을 계기로 윤원형을 비롯한 외척과 소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왕권은 실추되고 외척 일족의 수탈로 민생이 피폐하여 사회가 불안하였으며, 거듭되는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명종이 20세가 되던 해인 1553년(명종 8)에는 문정왕후가 8년 간의 수.. 2015. 9. 5.
(문신) 이우당 조태채 [충익공], 정경부인 청송심씨 이우당 충익공 조태채 1660(현종 1)∼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유량(幼亮), 호는 이우당(二憂堂). 존성(存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계원(啓遠)이고, 아버지는 괴산군수 희석(禧錫)이다. 어머니는 백홍일(白弘一)의 딸이다. 태구(泰耉)의 종제이며, 태억(泰億)의 종형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문과에 종형 태구와 함께 병과로 급제하였다. 내직으로 승문원의 정자·저작·박사와 성균관의 전적·직강, 사헌부의 감찰·지평·대사헌, 사간원의 정언·헌납·대사간, 홍문관의 수찬·교리, 승정원의 동부승지, 장례원의 판결사, 한성부의 판윤, 그리고 육조의 판서, 좌참찬 겸 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1717년 좌의정에 이르고 판중추부사에 전직하였다. 외직으로는 옥.. 2013. 10. 15.
(세종의 장모) 삼한국대부인 순흥안씨 삼한국대부인 순흥안씨 조선 제4대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의 모친이자 영의정을 지낸 안효공 심온(? - 1418)의 배위인 순흥안씨의 묘이다. 호석을 두른 봉분이 설치되어 있고, 묘 앞 중앙에는 글씨가 마멸된 원래의 대리석 묘비와 1910년 새로 건립한 묘비가 있고, 그 앞에 상석 향로석 장명 등, 문인석이 좌우에 갖추어져 있다. 특히 묘비와 상석 주위는 경사지게 장대석으로 사다리형 계단을 조성하여 아늑하고 품위있는 제단이 되게 했다. 장명등은 방형 기단부 위에 방형의 화창을 가진 화사면이 급경사를 이룬 옥개를 얹었다. 청송심씨(靑松沈氏)인 안효공(安孝公)에게 출가하여 장녀 소헌왕후를 비롯한 6명의 딸과 아들 3형제의 모두 9남매를 출산했고, 세종대왕의 부부인(府夫人)으로서 남편에 대한 내조와 자녀교육에 헌.. 2012. 9. 18.
(관직) 교양부원군 노물재 교양부원군 노물재 ?∼1446(세종 28).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교하(交河). 아버지는 우의정 한(閈)이며, 부인은 심온(沈溫)의 딸로서 소헌왕후의 동생이다. 1431년(세종 13) 유거감찰(謬擧監察)에 임명되었을 때 최안우(崔安雨)의 천거에 사사로움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파직되지는 않았다. 그뒤 첨지중추부사·동지돈령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회신(懷愼)·유신(由愼)·사신(思愼)·호신(好愼) 등 4명의 아들이 있었다. 사망 후인 1455년(세조 1) 원종공신 2등에 봉해졌고, 같은해 부인이 죽자 부의는 물론 곡식과 종이·관곽까지 하사받았다. 1490년(성종 21)에는 물재의 재산상속시 그의 유서 중에 첩자에게는 재산상속을 하지 말라는 문구가 있어 문제가 되었다. 이것은 《경국대.. 2012. 9. 4.
(세종의 국구) 청천부원군 심온 [안효공] 청천부원군 안효공 심온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중옥(仲玉). 아버지는 청성백(靑城伯) 덕부(德符)이다. 세종의 비 소헌왕후(昭憲王后)가 그의 딸이다. 고려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냈으며, 조선왕조 개국 후 의랑(議郞)·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1404년(태종 4) 상호군 겸 판통례문사(上護軍兼判通禮門事)가 되었고, 이후 좌부대언(左副代言)·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등을 역임했다. 1408년 딸이 충녕군(忠寧君 : 나중에 세종)의 비가 되었다. 1411년 풍해도관찰사·대사헌을 거쳐, 1414년 형조판서가 되었고, 이후 호조판서·판한성부윤·좌군도총제·이조판서를 역임했다. 태종의 선위(禪位)로 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이 되었다. 1418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는데, 이때 병조참판 강상인(姜尙仁)과 그.. 201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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