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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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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정씨79

(문신) 청도군수 길보 정흥경, 숙인 진주류씨, 숙인 의령남씨 -해주정씨- 청도군수 길보 정흥경 -해주정씨 청도공파조- 공의 휘는 흥경(興慶)이고, 자는 길보(吉甫)이며, 정도공(貞度公)의 증손이며, 동지공 휘 충석(忠碩)의 손자이다. 아버지 휘 침(忱)은 문과에 올라 통정대부 호조참의(通政大夫戶曺參議)에 이르렀고, 어머니 숙부인 화순최씨(和順崔氏)는 휘 자빈(自濱)의 따님이다. 신미(1451) 2월 10일에 공이 태어나 기축(1469)에 음보(蔭補)로 전력부위(展力副尉)가 되고, 21년 을사(1485)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그 복을 마친 후 사용부사정(司勇副司正)에 임명되었고, 무오년(1498) 봄에 북부참봉(北部參奉)이 되고, 신유년(1501)에 전옥서(典獄署)로 옮겼으며, 갑자년(1504)에 풍저창 봉사(豊儲倉奉事)로 전임하고, 을축년(1505)에 직장(直長)으로 승진되.. 2020. 3. 27.
(중종) 금원군 앙지 이영, 파징군부인 해주정씨 -전주이씨- 중종대왕의 3남으로 휘는 영(쫜), 자는 앙지(仰止)이다. 어머니 희빈(熙嬪) 남양홍씨는 경주(景舟)의 딸인데, 공은 희빈의 두 아들 중 큰 아들로 1513년(중종 8) 6월 9일에 태어나 1520년(중종 15)에 봉작을 받고 문소전(文昭殿) · 연은전(延恩殿)의 도제조(都提調), 사옹원(司饔院) 도제조, 종부시(宗簿寺) 도제조와 관종친부사(管宗親府事)를 겸임하다가, 1562년(명종 17) 4월 7일에 별세하니 향년 50세이다. 성품이 어질고 순하며 거짓이나 겉치레를 모르고,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자유생활을 즐겼지만,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배위는 파징군부인(波澄郡夫人) 정씨(鄭氏)로서 증 좌찬성 승휴(承休)의 딸인데 아들은 없고 1녀만이 있어 남관(南琯)에게 출가하였다. 2018. 10. 27.
(문신) 해풍군 제순공 낙만 정효준, 정부인 전의이씨 -해주정씨- 해풍군 제순공 낙만 정효준 1577(선조 10)∼1665(현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효우(孝于), 호는 낙만(樂晩). 아버지는 돈녕부판관 흠(欽)이다. 어려서부터 시명이 높았고, 특히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났다. 1613년(광해군 5)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 대북파에 의하여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론이 대두되었을 때, 어몽렴(魚夢濂)·정택뢰(鄭澤雷) 등과 함께 극력 항소하여 이이첨 등의 처형을 주장하였다. 이로 인하여 두 사람은 유배당하였으나 그는 북관에 피신하여 화를 면하였다. 과거에 여러 차례 낙방하다가 늦게서야 1618년(광해군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에 서용되어 효릉참봉(孝陵參奉)·전생서봉사(典牲署奉事.. 2016. 7. 25.
(문신) 해성군 송촌 정흠, 정부인 평산신씨 -해주정씨- 증 호조판서 겸 동지의금부사 행 돈녕부판관 해성군 송촌 정흠 1557년(명종 12)∼1635년(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흠재(欽哉), 호는 송천(松泉). 증조부는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정미수(鄭尾壽)이고, 조부는 해림군(海林君) 정승휴(鄭承休)이며, 부친은 해녕군(海寧君) 정원희(鄭元禧)이다. 벼슬은 토목영선(土木營繕)의 일을 맡아보는 선공감참봉(繕工監參奉)을 거쳐 1604년(선조 37)에 대흥현감(大興縣監)이 되었다. 그 후 양천현감(陽川縣監)‧문화현감(文化縣監)‧돈령부판관(敦寧府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호조판서(戶曹判書)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 추증되었고 해성군(海城君)에 봉해졌다. 묘는 남양주 진건면 사능리 사릉 경내에 있다. 2016. 7. 18.
(문신) 해림군 경수 정원희, 정부인 상주김씨 -해주정씨- 증 호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부총관 행 사헌부감찰 해림군 경수 정원희 1527년(중종 22)∼1568년(선조 1).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경수(景綬). 증조부는 형조참판(刑曹參判) 정종(鄭悰)이고, 조부는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정미수(鄭眉壽)이며, 부친은 해림군(海林君) 정승휴(鄭承休)이다.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고 호조참판(戶曹參判) 겸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官)에 추증되고 해녕군(海寧君)에 봉해졌다. 묘는 남양주(南楊州) 진건면(眞乾面) 사능리 사릉 경내에 있다. 할아버지 해평부원군 묘 아래 위치한다. 해림군때 부터 단종대왕과 정순왕후의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그 뒤로 약 170여년을 모셨다. 단종복위사건으로 멸문지화를 당해야 했던 해주정씨 대종가는 바람앞에 초.. 2016. 7. 17.
(문신) 해림군 계지 정승휴, 정경부인 안동권씨 -해주정씨- 증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행 충훈부도사 해림군 계지 정승휴 1488년(성종 19)∼1534년(중종 29).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계지(繼之). 조부는 영양위(寧陽尉) 정종(鄭悰)이고, 부친은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정미수(鄭眉壽)이다.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를 역임하고, 사후에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추증되고 해림군(海林君)에 봉해졌다. 큰딸은 종실인 금원군(錦原君) 이영(李岺)에게 출가하였다. 묘는 남양주(南楊州) 진건면(眞乾面) 사능리 사릉 경내에 있다. 부인 안동권씨는 충민공 권건의 따님이시다. 성종대왕 11남 전성군 이변과는 동서지간이시다. 부친 정미수가 돌아가시자 그 뒤를 이어 한결같이 정순왕후를 모셨다. 정순왕후께서 돌아가시자 3년.. 2016. 7. 17.
(공신) 해평부원군 소평공 우재 정미수, 정경부인 전의이씨 -해주정씨- 해평부원군 소평공 우재 정미수 1456(세조 2)∼1512(중종 7). 조선 전·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기수(耆叟), 호는 우재(愚齋). 전라남도 광주 출생. 아버지는 형조참판 종(悰)이며, 어머니는 문종의 딸 경혜공주(敬惠公主)이다. 아버지가 사사(賜死)되자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소환, 세조가 길렀다. 잠저 때의 성종을 시중하다가 1473년(성종 4) 돈녕부직장·형조정랑을 지냈다. 죄인의 자손으로 임관되었다 하여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았으나 성종의 무마로 무사하였다. 1476년 중부참봉(中部參奉)을 거쳐 이듬해 선전관을 지내고, 1489년 사헌부장령·사섬시첨정·한성부서윤·인천부사 등을 지냈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당상관으로 올라 장례원판결사에 임명되고, 1496년(연산군 2) 충청도관찰사.. 2016. 7. 17.
(무신) 대장군 정초 -해주정씨- 진서대장군 정초 3세(世)휘(諱) 초(初일명:礎) 대장군공(大將軍 公)께서는 조선 제3대 태종(太宗) 때에 전라도(全羅道) 해군(海軍)과 육군(陸軍)을 총할(總轄)하는 도원수(都元帥)에 임명(任命)되었으며 곧 이어 평안도(平安道 )육해군(陸海軍)을 총지휘(總指揮)하는 도총수(都摠帥)인 진서 대장군(鎭西大將軍)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公)께서는 선천적인 성격이 강직(剛直)하여 남에게 굴하지 아니하였으며 기국(氣局이) 넓고 위대(偉大)하였고, 지(智)와 용(勇)이 뛰어나 무장(武將)으로서 그 불의(不義)를 용납지 아니하였다. 조선 왕조 실록에 의하면 공(公)이 전라도 진무사(全羅道鎭撫使)로 있을 때 왜적(倭賊)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도 진무사(都鎭撫使)인 이지실(李之實)의 의(義)롭지 아니한 행동을 보고 발끈.. 2016. 5. 21.
좌찬성집현전대제학 정도공 정역 신도비 좌찬성집현전대제학(左贊成集賢殿大提學) 증영의정 시정도공(贈領議政 謚貞度公) 신도비명(神道碑銘)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집현전대제학 겸 판중군도총제부사(崇政大夫 議政府左贊成 集賢殿大提學 兼判中軍都摠制府事) 증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 시정도(贈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謚貞度) 정공신도비명병서(鄭公神道碑銘竝序) 묘앞에 비를 세우는 것은 훌륭한 업적을 드러내고 혼령이 다니는 길을 장식하기 위함이니 옛부터 이름이 높고 공적이 세상에 뛰어난 사람은 모두 비를 세워 후세에 전하게 하였다. 우리 선조 정도공(貞度公)의 묘소에 비가 없으니, 이는 선대에 미처 세울 겨를이 없었던지 혹은 후일을 기다린 것이 아니겠는가. 공의 아름다운 행실과 뛰어난 업적은 국승에 실려 있고 또 사람들에게 전해져 오고 있.. 2016. 4. 2.
지돈녕부사 해풍군 정효준 신도비 조선국 자헌대부 지돈녕부사 해풍군 정공신도비명과 서문 보국숭록대부 행판돈녕부사 이정영(李正英) 전서(篆書). 숭록대부 판중추부사 겸예문관제학 강백년(姜栢年) 지음. 가선대부 예조참판 겸오위도총부부총관 오심(吳深) 글씨. 공은 을사년 6월 12일 89세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품계는 자헌대부이고 관직은 지돈녕부사였으며 해풍군의 호를 가지고 있었다. 부음이 오자 나라에서는 조회를 거두고 부의를 보냈으며 예관을 보내 위문하고 제사를 지냈다.석 달 뒤 8월에 양주 해평리(楊州海坪里) 부갑(負甲: 서향)의 언덕에 장례를 지냈다. 당시 지문을 내가 지었다. 근래 공경의 예로써 묘 앞길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그 부석(趺石)이 이지러졌으므로 아들 판서공 형제가 또 내게 글을 청해 새기고자 했다. 아! 공은 내게 선배가 되.. 2016.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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