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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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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순흥부사 이계장, 숙부인 해주정씨 순흥부사 이계장 인천인 이효인(李孝仁)의 아들이며 벼슬이 순흥부사(順興府使)에 이르렀다. 배위는 정도공 정역의 따님이시며, 효령대군의 배위 예성부부인의 동생되신다. 묘는 실전되 었다고 한다. 2014. 10. 11.
(세종) 영응대군 이염 [경효공], 춘성부부인 해주정씨, 대방부부인 여산송씨, 연성부부인 연안김씨 경효공 영응대군 이염 영응대군(永膺大君) [1434(세종 16)∼1467(세조 13)] 휘는 염(琰), 시호는 경효(敬孝). 세종대왕의 제8남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이다. 1441년(세종 23) 영응대군에 봉해지고, 1443년에 역양대군(歷陽大君), 1447년에 영응대군으로 개봉(改封)되었다. 배위는 해주정씨 참판 충경(忠敬)의 딸과 여산송씨 판중추(判中樞) 복원(復元)의 딸이다. 부왕의 총애가 지극하였으며, 1450년 부왕인 세종대왕도 그의 저택인 동별궁(東別宮)에서 승하하였다. 1463년(세조 9) 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통달하였다. 2014. 10. 11.
(태종) 성령대군 이종 [소경공], 삼한국대부인 창령성씨 소경공 성령대군 이종 태종대왕의 4남이며 세종대왕의 동생으로 휘는 종(?), 시호는 소경(昭頃). 8세에 취학하고 1414년(태종 14)에 성녕대군으로 책봉되었으며 1417년(태종 17)에 대광보국 숭록대부 계급에 올랐다. 창녕성씨(1417∼ ?) 좌찬성 희정공(僖靖公) 억(抑)의 딸을 부인으로 맞고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의 첩지를 받았다.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다. 대군은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활을 쏠 때 백발백중이므로 태종대왕 양위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1418년(태종 18)에 병환이 생겨 태종대왕이 친히 치병하고 어루만지며 쾌유하기를 빌었으나 불행하게도 그 해 2월 5일 14세의 어린 나이로 별세하였다. 태종대왕은 크게 슬퍼하며 2일간 수라를 물리치고 3일간 정사를 쉬었으며 30일 .. 2014. 10. 11.
(태종) 효령대군 이보 [정효공], 예성부부인 해주정씨 정효공 효령대군 이보 1396(태조 5)~ 1486(성종 17)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둘째 아들 이름은 보(補), 초명은 호(祜). 자는 선숙(善叔), 호는 연강(蓮江).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閔氏)이다. 1407년(태종 7) 효령군(孝寧君)에 봉해졌으며, 1412년 효령대군으로 진봉되었다. 활쏘기에 능해 항상 태종을 따라 사냥터에 다녔으며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불교를 숭상하여 회암사(檜巖寺)의 중수와 흥천사탑전(興天寺塔殿)의 수리, 원각법회(圓覺法會) 개최 등 많은 불사를 주관했다. 또한 〈반야바라밀다심경 般若波羅蜜多心經〉·〈원각경〉 등도 언해·간행했다. 유신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불교의 보호와 진흥에 크게 기여했으며 문장에도 능했다. 성종대까지 왕실 어른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2014. 10. 11.
(문신) 차호 민암, 정경부인 경주김씨, 정경부인 해주정씨 차호 민암 1636(인조 14)~ 1694(숙종 2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장유(長孺), 호는 차호(叉湖). 아버지는 이조참판 응협(應協)이다. 1668년(현종 9)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지평·승지·함경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678년(숙종 4) 당시 인조반정에 대한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기 위한 변무부사(辨誣副使)로 복평군연(福平君 연)과 함께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했다. 1680년 대사헌으로 있다가 경신대출척으로 남인들이 대거 실각하자 파직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다시 기용되어 대사헌·대제학·병조판서를 역임하면서 김수항(金壽恒)·송시열(宋時烈) 등 서인들의 처형 문제에 강경론을 주장했다. 1691년에는 우의정에 올랐으며,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94년 김춘택(.. 2014. 9. 26.
(문신) 묵재 허적 [숙헌공], 정경부인 광주이씨, 정경부인 여흥민씨 - 탁남 숙헌공 묵재 허적 1610(광해군 2)~ 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남인으로 제1·2차 예송에서 서인과 대결했으며, 제2차 예송에서 승리하여 집권한 뒤 탁남(濁南)의 영수가 되었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여차(汝車), 호는 묵재(默齋)·휴옹(休翁). 아버지는 부사 한(僩)이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를 거쳐 1637년 정시문과에 급제하고 예문관검열·홍문관부수찬을 지냈다. 1641년 의주부윤으로 관향사(管餉使)를 겸했다. 1645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는데, 1647년 일본의 사신 다이라[平成辛]를 위법으로 접대하여 파직되었다. 그뒤 다시 기용되어 1653년(효종 4) 호조참판, 1655년 호조판서를 거쳐 1659년에 형조판서가 되었다. 이해 효종이 죽어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 2014.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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