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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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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당의 묘지기행760

(문신) 혜지 박혜, 의인 성주여씨 -밀양박씨- 본관은 밀양 자는 혜지, 형님은 문도공 박훈이시다. 2023. 11. 13.
(문신, 토정비결) 토정 이지함, 공인 완산이씨 - 한산이씨-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伯)·형중(馨仲), 호 수산(水山)·토정(土亭)이며,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현 마포 용강동 부근)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이라는 호가 붙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6대손으로, 현령 이치(李穉)의 아들이며,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아버지 이치는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석방되었고, 1507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의금부 도사와 수원 판관 등을 지냈다. 어머니 광산김씨는 판관을 지낸 김맹권(金孟權)의 딸이며, 김맹권은 세종으로부터 단종의 보필을 부탁받았으나 수양대군이 집권하고 단종이 죽게되자 낙향하여 여생을 은거한 인물이다. 1517년 충청도 보령에서 태어나 1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 2023. 11. 10.
(부도) 정지국사 -보물 제 531호- 속성은 김(金), 호는 축원(竺源)이다. 황해도 재령에서 아버지 연(延)과 어머니 윤씨(尹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장수산 현암사(懸菴寺)로 출가하여 《능엄경(楞嚴經)》을 배워 깊은 뜻을 깨달았다. 1353년(공민왕 2) 무학(無學)과 함께 원나라로 가서 지공(指空)의 인가를 받은 나옹(懶翁)의 제자가 되었다. 1356년 귀국하여 은둔하며 수행에만 힘써 법회를 열지 않았다. 개풍 영천사의 대장경을 용문사로 옮겨 봉안하였다. 천마산 적멸암(寂滅庵)에서 나이 61세, 법랍 54세로 입적하였다. 나라에서 정지국사(正智國師)의 시호를 내렸으며, 제자 조안(祖眼) 등이 미지산(彌智山) 용문사에 부도와 비를 세웠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천 [智泉]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023. 11. 6.
(공신, 용인시 향토유적) 순양부원군 상경 안몽윤, 정경부인 한산이씨 -순흥안씨, 진무공신-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상경(商卿). 아버지는 직장(直長) 세복(世復)이다. 음보로 군직에 나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을 토벌하고, 선조가 8도에 내린 명에 의하여 부적행위(附敵行爲)를 하며 구날(構捏 : 억측으로 일을 꾸밈)을 일삼던 왜역관 김덕회(金德澮)·김응관(金應灌)을 목베어 행재소에 보냈다. 전주 분조(分朝 : 비상 시에 정궁을 떠나 다른 장소에서 국정을 전담하던 임시조정)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9년에 부장(部長)으로 창덕궁을 지켰으며 그 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옥구현감·안동판관 등의 외직을 지내면서 일을 잘 처리하여 함안군수에 승진하고, 1612년(광해군 4)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듬해에 우림장(羽林將), 1618.. 2023. 10. 23.
(독립운동가, 교육자) 김명신 김명신(金明信)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교육자로 3.1 만세 운동 당시 해주군의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투옥, 후에 석방되었다. 한국의 초기 여자 전도사 주룰루의 아들이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자의 한 사람이었던 박희도는 그의 사촌 누이에게 부군이 되었다. 한국의 초기 여자 전도사 주룰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박희도의 처사촌이다. 어머니 주룰루가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할 때 따라 나왔다. 그러나 아버지와 형이 곧 사망하여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1919년의 3.1 만세 운동 직전 경성에서 만세 시위 유인물과 태극기를 인쇄하여 해주군으로 비밀리에 이송하였다. 3월 1일 3.1 만세 운동이 발생하자 해주군 해주읍 내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지자 최성모, 박희도, 오현경 등과 함께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 2023. 10. 19.
(협객) 조일환 - 김두한 후계자 협객 조일환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다. 분명 좋은일도 많이 했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했던것 같다. 조일환(曺一煥, 1938년~2009년 7월 13일)은 김두한의 후계자이다.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열일곱살이 되던 해방 전후 충남 천안 지역 주먹계를 평정한 뒤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 당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천안 시내 유관순 동상 앞에서 새끼손가락을 잘라 항의한 바 있다. 2005년 3월에는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의 망언과 신사참배, 역사 교과서 왜곡 중단 반성을 촉구하며 조씨의 아내와 아들이 손가락을 절단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는 기독교에 귀의했다. 이후 2009년 7월 13일에 사망하였다. 2023. 10. 9.
(효자) 희주 송지겸, 부인 청주한씨 -야성송씨, 의원-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야성. 자는 희주(希周). 양지현(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여 천성이 지효하였다. 부친이 생존해 계실 때에는 조석으로 문안하고 겨울에는 행여 방이 찰세라 군불을 지펴 따뜻하게 하였으며, 하인을 시키지 않고 반드시 손수 하였다. 부친의 환우 중에는 험한 고개를 넘어 20여 리나 되는 다른 동네에 피접처를 정한 후 시탕 간병하였는데 늦은 밤에는 범이 나타나 길을 밝혀 주었다고 한다. 친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고 거상 중에는 고기를 먹지 않고 소식하였다. 부친으로부터 전수받은 의술로 명의라는 이름을 남겼다. 언젠가 궁궐에 초치되어 왕의 진맥을 보고 곧 퇴궐하여 급히 탕제를 지어서 입궐하였더니 임금께서 이미 붕어하셨기로 왕의 환우를 치.. 2023. 10. 9.
(묵둔 김계권 배위) 영인 예천권씨 https://madangca.tistory.com/738 (문신) 묵둔 김계권 -안동김씨, 신안동김씨- ㅇ 김계권(金係權)은 김삼근(金三近)과 상락김씨(上洛金氏) 사이에서 1410년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묵둔(默遁)이며 동생이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김계행(金係行)이다. 음보로 관직에 나가 직 madangca.tistory.com 영인(令人) 예천권씨(醴泉權氏)로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낸 제평공(齊平公) 권맹손(權孟孫)의 딸이며 1409년(태종9년) 2월 22일 태어나 1496년(연산군2년) 겨울 88세로 사망하였다. 슬하에 5남 6녀를 두었는데 1남은 세조때 국사(國師)를 지낸 등곡(燈谷) 학조대사(學祖大師) 영형(永衡) 2남은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영전(永銓) 3남은 진사(進士) 영균(永.. 2023. 10. 6.
(문신) 묵둔 김계권 -안동김씨, 신안동김씨- ㅇ 김계권(金係權)은 김삼근(金三近)과 상락김씨(上洛金氏) 사이에서 1410년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묵둔(默遁)이며 동생이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김계행(金係行)이다. 음보로 관직에 나가 직장(直長) 주부(注簿)를 거쳐 1455년 겸주부(兼主簿)때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녹훈 되었다. 그 후 조산대부(朝散大夫) 한성부 판관(漢城府 判官)을 역임하였다. 1458년(세조4년)에 사망하였다. 묘표(墓表)는 후손 이조참판(吏曹參判) 김응순(金應淳)이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였을때 고쳐 세우고 썼다. 배위(配位)는 영인(令人) 예천권씨(醴泉權氏)로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낸 제평공(齊平公) 권맹손(權孟孫)의 딸이며 1409년(태종9년) 2월 22일 태어나 1496년(연산군2년) 겨울 88세로 사망하였다... 2023. 10. 6.
(문신) 졸탄 충간공 김권, 정경부인 한산이씨 -청풍김씨- 1549 (명종 4) ~ 1622 (광해군 14) 자는 이중(而中), 호는 졸탄(拙灘), 시호는 충간(忠簡), 덕무(德懋)의 아들. 성 혼(成 渾)에게 학 문을 배우고, 1580년(선조 1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헌납(獻納).사복시 첨정 (司僕寺僉正) 등을 거쳐 호조 참판(戶曹參判)이 되었으며, 1615년(광해군 7) 사 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인조 때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다. 202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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