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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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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홍씨28

(문신) 남녕군 나재 홍명구[충렬공], 정경부인 평산신씨 -남양홍씨- 남녕군 충렬공 홍명구 1596년(선조 29)∼1637년(인조 1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로(元老), 호는 나재(懶齋). 참의 홍서익(洪瑞翼)의 아들이다. 8세에 능히 시를 지으니 이항복(李恒福)‧신흠(申欽) 같은 선비들이 칭찬하고 장차 큰 사람이 되리라 하였다. 1619년(광해군 11) 알성문과에 장원하였으나 시골에 은거하다가 1623년 인조반정 후에 등용되어 1625년 부수찬이 되고, 1627년 직강을 거쳐 교리‧이조좌랑‧좌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1633년 우승지가 되고, 1635년 대사간‧부제학을 거쳐 이듬해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 이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자모산성(慈母山城)을 지키다가, 적병이 이미 평양을 지났고 남한산성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근왕병(勤王兵.. 2016. 1. 26.
(문신) 양정 김이순, 정경부인 남양홍씨, 정경부인 전주이씨 -안동김씨- 양정 김이순 김이순은 조선후기의 인물로 본관은 안동이다. 영의정 김창집의 현손이자 장악원정(掌樂院正) 김이장(金履長)의 아들이며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 김문근의 계부(系父)이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2016. 1. 23.
(덕종) 당양군 홍상 [소이공] 당양군 소이공 홍상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강(子剛)이며, 좌의정 홍응의 아들이다. 1466년(세조 12) 덕종의 딸 명숙공주(明淑公主)와 결혼하여 당양위(唐陽尉)에 봉해지고 오위도총부도총관이 되었다. 연산군 초에 수록대부(綏祿大夫)의 위계를 받았으나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함평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다가 안성으로 양이(量移)되었고, 다시 거제로 유배되었다가 제주로 이배되었다. 1506년(중종1)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조정에 돌아온 뒤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도량이 넓고 성품이 온화했으며 부귀로 사람을 억압하지 않아 백성들이 왕실의 사위인 줄 알지 못하였다 한다. 신도비는 1514년에 건립되었는데, 성균관사성 이행이 짓고 사헌부장령 김희수가 썼다. 시호는 소이(昭夷)이다. 2014. 9. 21.
(공신) 익성부원군 홍응 [충정공] 익성부원군 충정공 홍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지(應之), 호는 휴휴당(休休堂)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아버지는 한성부윤 심(深)이며 어머니는 윤규(尹珪)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좌정언이 되었다. 세조대에 집현전교리·보덕·도승지를 역임했고, 1463년(세조 9) 영응대군(永膺大君)과 함께 〈명황계감 明皇誡鑑〉을 국역하는 한편 〈경국대전〉의 편찬에도 참여했다. 1468년(예종 즉위)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고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졌으며 지중추부사로 승직되었다. 1471년(성종 2) 왕권에 위협이 되던 구성군(龜城君)을 제거한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록되고 익성부원군(益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479년 우의정이.. 2014. 9. 21.
(문종) 숙빈 남양홍씨 숙빈 남양홍씨 조선 제5대 왕 문종의 후궁. 본관은 남양(南陽). 한성부윤 홍심(洪深)의 딸이며, 좌의정 홍응(洪應)의 누이이다. 문종이 세자로 있을 때 후궁으로 세자궁에 들어갔다가 1431년(세종 13)에 같은 후궁인 권씨·정씨 등과 함께 승휘(承徽)에 봉해졌다. 두 차례 세자빈을 폐한 사건이 있은 뒤, 권씨가 세자빈에 올랐으나 일찍 죽자, 홍씨는 내궁을 주관하게 되었고, 문종이 즉위한 1450년에는 귀인(貴人)에 올랐다. 그 뒤 문종이 죽고 12세의 어린 단종이 즉위한 뒤에는 숙빈에 봉해져 단종을 측근에서 보필하였다. 딸이 하나 있었으나 1444년 4살의 어린 나이로 죽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숙빈홍씨 [淑嬪洪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3. 8. 24.
(문신) 계직 정적, 숙부인 남양홍씨 도승지 계직 정적 1635~1672 자는 계직(季直)이다. 해풍군 효준의 막내아들로 166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를 시작으로 성균관 전적, 서학교수, 예조와 병조의 원외를 역임하였다. 1670년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을 거쳐 이듬해 사헌부 장령으로 승진하여 서장관으로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업무를 수행하다가 병을 얻어 머물다가 이듬해 고국으로 돌아오던 중 사령에서 세상을 뜨셨다. 판서 임상원, 지돈녕부사 윤심과 두터운 친교가 있었다.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2013. 5. 19.
(무신) 오백 이주국 [무숙공], 정부인 남양홍씨 무숙공 오백 이주국 자는 군언(君彦), 호는 오백(梧栢), 시호는 무숙(武肅). 신종군의 6남 장연령의 9대손이다. 아버지는 함(涵)이며 어머니는 증 찬성(贊成) 구상정(具尙禎)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무과에 급제, 이듬해 선전관에 임명된 뒤 훈련원 주부 · 판관 등을 지냈다. 1748년(영조 24)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다온 뒤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는데 이 때 처음 호조에 무랑(武郞)이 설치되었다. 1754년(영조 30) 충청도 수군절제사가 되었고, 이듬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었으며 1759년(영조 35)에는 함경북도 절제사가 되었다. 1762년(영조 38) 장헌세자(莊獻世子) 장례 때 여사대장(輿士大將)을 역임하였고, 1773년(영조 49) 황해도 ·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7.. 2012. 7. 18.
(문신) 금석 홍영식 [충민공] 금석 충민공 홍영식 1855년(철종 6)∼1884년(고종 21).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육(仲育), 호는 금석(琴石). 서울 출신. 영의정 홍순목(洪淳穆)의 아들이다. 박규수(朴珪壽)의 문하에서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서광범(徐光範) 등과 함께 개화사상에 관심을 가졌고, 개항 직후 박규수가 죽자 중인 의관인 유홍기(劉鴻基: 호는 大致)의 지도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73년(고종 1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규장각의 정자(正字)‧대교(待敎)‧직각(直閣) 등을 역임하였다. 민영익(閔泳翊)과도 가깝게 지냈으며 1881년에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조사(朝士)로 선발되어 일본의 육군을 주로하여 시찰, 《일본육군총제(日本陸軍總制)》와 《일본육군조전(日本陸軍操典)》.. 201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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