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반응형
(천주교) 주문모 야고보 천주교사제 주문모 야고보 신부 주문모 야고보 신부 (1752~1801년) 1752년 중국 강남성 소주에서 태어난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성장하는 동안 그는 스스로 서양의 학문에 흥미를 느꼈으며 천주교 교리를 접하고는 이를 진리라고 생각하여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후 그는 북경교구 신학교에 입학하여 제1회 졸업생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당시 북경의 구베아(A. Gouvea 湯士選) 주교는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앙심이 깊은 데다가 중국 문학과 교회 신학에도 능통한 주문모 신부가 여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조선 선교사로 임명하였다. 이에 따라 주 신부는 성무 집행을 위한 모든 권한을 부여받고 1794년.. 2012. 7. 20.
(문신) 복암 이기양, 정부인 양천허씨 복암 이기양 자는 사흥(士興), 호는 복암(伏菴), 덕형(德馨)의 7세손. 1774년(영조50) 진사시(進士試)에 수석으로 합격, 영릉 참봉(英陵?奉)이 되고, 1795년(정조19)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부수찬(副修撰)이 되었다. 어어 검상(檢詳)·승지(承旨)를 역임하고, 1798년 의주 부윤(義州府尹)으로 나갔다가 1800년 진하부사(進賀副使)로서 청나라에 갔다. 이 때 천주교 교리를 듣고 은밀히 신봉했으며, 돌아와 실학자 이가환(李家煥)등과 사귀며 서학(西學)을 강론, 나라의 혁신을 위해 서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병조 참판(兵曹參判)·우승지(右承旨)·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1801년(순조 1) 대사간에 전임, 예조 참판·좌승지를 지냈다. 이 해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 2012. 7. 20.
(무신) 오백 이주국 [무숙공], 정부인 남양홍씨 무숙공 오백 이주국 자는 군언(君彦), 호는 오백(梧栢), 시호는 무숙(武肅). 신종군의 6남 장연령의 9대손이다. 아버지는 함(涵)이며 어머니는 증 찬성(贊成) 구상정(具尙禎)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무과에 급제, 이듬해 선전관에 임명된 뒤 훈련원 주부 · 판관 등을 지냈다. 1748년(영조 24)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다온 뒤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는데 이 때 처음 호조에 무랑(武郞)이 설치되었다. 1754년(영조 30) 충청도 수군절제사가 되었고, 이듬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었으며 1759년(영조 35)에는 함경북도 절제사가 되었다. 1762년(영조 38) 장헌세자(莊獻世子) 장례 때 여사대장(輿士大將)을 역임하였고, 1773년(영조 49) 황해도 ·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7.. 2012. 7. 18.
(서학) 강완숙 골룸바 최초의 여성회장 강완숙 골룸바 강완숙(姜完淑)1760(영조 36)∼1801(순조 1). 초기 천주교회의 순교자. 최초의 여성회장이다. 세례명 골롬바.충청남도 내포지방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덕산에 사는 홍지영(洪芝榮)에게 후처로 시집갔으나, 천주교가 충청도지방까지 전해지자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남편과 헤어져 시어머니와 전처의 아들 필주(弼周)와 함께 서울로 이사해 살았다.서울에 올라온 뒤 교우들과 접촉하면서 전교에 힘쓰는 한편, 지황(池璜) 등을 도와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영입하는 데 큰 소임을 하였다. 주문모가 1794년(정조 18)12월 밀입국하여 서울 최인길(崔仁吉)의 집에 숨어서 전교활동을 하던 중, 1795년 6월 배교자 한영익(韓永益)의 밀고로 체포령이 내려지자, 강완숙은 그를 자기집 .. 2012. 7. 18.
(문신) 금석 홍영식 [충민공] 금석 충민공 홍영식 1855년(철종 6)∼1884년(고종 21).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육(仲育), 호는 금석(琴石). 서울 출신. 영의정 홍순목(洪淳穆)의 아들이다. 박규수(朴珪壽)의 문하에서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서광범(徐光範) 등과 함께 개화사상에 관심을 가졌고, 개항 직후 박규수가 죽자 중인 의관인 유홍기(劉鴻基: 호는 大致)의 지도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73년(고종 1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규장각의 정자(正字)‧대교(待敎)‧직각(直閣) 등을 역임하였다. 민영익(閔泳翊)과도 가깝게 지냈으며 1881년에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조사(朝士)로 선발되어 일본의 육군을 주로하여 시찰, 《일본육군총제(日本陸軍總制)》와 《일본육군조전(日本陸軍操典)》.. 2012. 7. 17.
(문종) 경혜공주, 영양위 정종[헌민공] 경혜공주, 영양위 헌민공 정종 공주는 문종대왕의 따님으로 어머님 권씨(權氏)는 문종이 즉위하신 뒤 현덕왕후(顯德王后)로 추책(追冊)되었다. 안동의 대성(大姓)인 고려의 태사(太師) 행(幸)의 후손인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권전(權專)이 태부(太傅) 문헌공(文憲公) 최충(崔冲)의 12대손인 부정(副正) 최용(崔鄘)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태종 18년(1418)에 왕후를 낳으니 세종 13년(1431)에 세자빈으로 뽑히어 동궁(東宮)으로 들어와 문종을 모시었다. 세종 17년(1435)에 공주를 낳아 세종 32년(1450)에 정종(鄭悰)에게 시집갔다. 종(悰)은 영의정에 추증된 정도공(貞度公) 역(易)의 손자요, 형조참판 충경(忠敬)의 아들이다. 단종 3년(1455)에 종(悰)이 광주로 귀양가자 공주도 함께 따라가.. 2012. 7. 14.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