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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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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원릉군 평중 원균, 정경부인 파평윤씨 원릉군 평중 원균 1540년(중종 35)∼1597년(선조 30).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평중(平仲). 본관은 원주(原州). 고려 태조 때의 통합삼한공신(統合三韓功臣) 병부령 원극유(元克猷)의 후손이다. 부는 원준량(元俊良)이다. 1567년(선조 즉위년) 정묘 식년시(式年試) 무과 을과 2위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造山萬戶)로 있을 때 변방의 오랑캐를 무찌르는 데 공이 컸으므로, 부령부사로 특진되었다가 다시 종성으로 옮겨 병사 이일(李鎰)을 따라 시전부락(時錢部落)을 격파하는 데도 공을 세웠으며, 1592년(선조 25)에는 경상우수사가 되었다. 그해 4월 13일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양국간의 전쟁준비 격차로 말미암아 개전초부터 일방적인 패주의 연속이었으며, 거진(巨鎭)의 명관들은 다투어 도주하고.. 2012. 7. 23.
(1) 제릉(齊陵) -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 안변한씨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 안변한씨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1337년 음력 9월 ~ 1391년 음력 9월 12일)는 조선 태조(太祖)의 정비이다. 별호는 절비(節妃), 시호는 승인순성신의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이며, 1897년 대한제국 수립 후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로 추존된다. 안천부원군 한경(安川府院君 韓卿)과 삼한국대부인 신씨(三韓國大夫人 申氏)의 딸로 본관은 안변(청주)(安邊,淸州)이다.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르기 1년 전에 사망하였다. 1337년 음력 9월 고려 동북면 영흥(永興) 풍류산 아래 금리(琴理)라는 곳에서 호족으로 태어났다. 한씨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뒷산에는 오색 영롱한 구름이 감돌았다 하여 이산을 풍류산(風流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훗날 왕비.. 2012. 7. 21.
(관직) 영양부원군 정종 [영양위] 영양부원군 헌민공 정종 [영양위] 정종(鄭悰, ? ~ 1461년)은 참판 정충경(忠敬)의 아들이다. 1450년(세종 32년)에 문종의 딸 경혜공주(敬惠公主)와 혼인한 뒤 영양위(寧陽尉)에 봉하여졌다. 단종 초기에 형조판서가 되어 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가, 1455년(단종 3년) 금성대군의 사건에 관련되어 유배되었다. 이 해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하였고 정종은 문종의 유일한 사위라 하여 경기도 양근에 양이(量移)되었다. 1456년(세조 2년) 사육신 사건으로 죄가 가중되어 수원 통진을 거쳐 경기도 광주시에 안치되었다가 1461년에 승려 성탄 등과 반역을 도모했다 하여 사사되었다. 영조 때 신원되어 단종묘와 공주 동학사(東鶴寺)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헌민(獻愍)이다.단종 초기에 형조판서.. 2012. 7. 21.
(천주교) 주문모 야고보 천주교사제 주문모 야고보 신부 주문모 야고보 신부 (1752~1801년) 1752년 중국 강남성 소주에서 태어난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성장하는 동안 그는 스스로 서양의 학문에 흥미를 느꼈으며 천주교 교리를 접하고는 이를 진리라고 생각하여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후 그는 북경교구 신학교에 입학하여 제1회 졸업생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당시 북경의 구베아(A. Gouvea 湯士選) 주교는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앙심이 깊은 데다가 중국 문학과 교회 신학에도 능통한 주문모 신부가 여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조선 선교사로 임명하였다. 이에 따라 주 신부는 성무 집행을 위한 모든 권한을 부여받고 1794년.. 2012. 7. 20.
(문신) 복암 이기양, 정부인 양천허씨 복암 이기양 자는 사흥(士興), 호는 복암(伏菴), 덕형(德馨)의 7세손. 1774년(영조50) 진사시(進士試)에 수석으로 합격, 영릉 참봉(英陵?奉)이 되고, 1795년(정조19)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부수찬(副修撰)이 되었다. 어어 검상(檢詳)·승지(承旨)를 역임하고, 1798년 의주 부윤(義州府尹)으로 나갔다가 1800년 진하부사(進賀副使)로서 청나라에 갔다. 이 때 천주교 교리를 듣고 은밀히 신봉했으며, 돌아와 실학자 이가환(李家煥)등과 사귀며 서학(西學)을 강론, 나라의 혁신을 위해 서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병조 참판(兵曹參判)·우승지(右承旨)·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1801년(순조 1) 대사간에 전임, 예조 참판·좌승지를 지냈다. 이 해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 2012. 7. 20.
(무신) 오백 이주국 [무숙공], 정부인 남양홍씨 무숙공 오백 이주국 자는 군언(君彦), 호는 오백(梧栢), 시호는 무숙(武肅). 신종군의 6남 장연령의 9대손이다. 아버지는 함(涵)이며 어머니는 증 찬성(贊成) 구상정(具尙禎)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무과에 급제, 이듬해 선전관에 임명된 뒤 훈련원 주부 · 판관 등을 지냈다. 1748년(영조 24)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다온 뒤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는데 이 때 처음 호조에 무랑(武郞)이 설치되었다. 1754년(영조 30) 충청도 수군절제사가 되었고, 이듬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었으며 1759년(영조 35)에는 함경북도 절제사가 되었다. 1762년(영조 38) 장헌세자(莊獻世子) 장례 때 여사대장(輿士大將)을 역임하였고, 1773년(영조 49) 황해도 ·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7.. 201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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