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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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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47

(퇴계이황 계배) 정경부인 안동권씨 정경부인 안동권씨 1530년 서른 살에 둘째부인 권씨를 맞았다. 첫 부인과 사별한 지 3년이 지난 뒤였다. 아내를 새로 얻게 되는 것은 우연한 인연을 통해서였다. 이황이 사는 향리 인근의 예안 땅에 권질(權瓆)이라는 기개 있는 학자 하나가 유배를 왔다. 권질은 젊은 이황을 만난 뒤 그의 인격과 학식에 반했다. 그에게 자기 가문의 기구한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 세상일은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마음먹느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 퇴계 이황이 첫째 부인을 잃고 혼자 살 때의 일이다. 평소 존경하던 선비 권질이 퇴계 이황을 불러 술 한잔을 권하며 한참을 주저하다 말했다. "정신이 맑지 못하고, 영리하지 못한 나의 딸과 혼인해 줄 수 있겠는가? 부족한 내 딸을 믿고 맡길 사람은 아.. 2016. 5. 21.
(문신) 치헌 권경유 [효강공], 정부인 양천허씨 -안동권씨- 효강공 치헌 권경유 ?∼1498(연산군 4).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군요(君饒)·자범(子汎), 호는 치헌(痴軒)·취정(翠亭). 집지(執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화(永和)이고, 아버지는 판관 질(耋)이며, 어머니는 우참찬 이승손(李承孫)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3년(성종 14)에 진사가 되고, 148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에 등용된 뒤 홍문관정자를 거쳐, 1490년에는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여러 차례 천거되어 교리에 이르렀으며, 1495년(연산군 1)에는 외직을 청하여 제천현감이 되었다. 성종 때 김일손(金馹孫)과 함께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었는데, 이것.. 2016. 4. 23.
(문신) 자수 권경우, 정부인 함종어씨 -안동권씨- 자수 권경우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수(子綏). 집지(執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화(永和), 아버지는 판관 질(耋), 어머니는 우참찬 이승손(李承孫)의 딸이다. 동생이 대사헌 경희(景禧)와 이조정랑 경유(景裕)이다. 1470년(성종 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뒤에 예문관봉교로 승진해 사관 선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듬해에는 천추사(千秋使)의 검찰관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통사(通事) 조종손(趙宗孫) 등의 밀무역을 검찰한 공로로 4계급 승진해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이어서 홍문관수찬으로 옮겨 제주경차관(濟州敬差官)으로서 제주도민의 궁핍현상을 지적하고, 그 대책의 강구를 요청하였다. 이듬해 다시 사간원정언이 되어 임사홍(任士洪)이 국정을 .. 2016. 4. 23.
(육괴정) 남당 엄용순, 부인 안동권씨 -영월엄씨- 육괴정 남당 엄용순 본관은 영월(寧越), 호는 남당(南塘)이다. 선공감 부정(副正)을 지낸 엄훈(嚴訓)의 아들이다. 중종 때 2명의 형과 함께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은거 생활을 하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의를 숭상하며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519년(중종 13)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들이 대거 숙청되자, 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화를 당한 아버지의 묘가 있는 이천 도립리로 낙향하여 은거 생활을 하였다. 은거 생활 중 도립리에 육괴정이란 정자를 건립하였고, 당대의 명현 김안국을 포함한 5명의 선비와 함께 육괴정에 모여 세상을 등진 채 시회와 학문을 강론하며 우의를 다지고 도를 즐겼다. 이들 6명의 선비를 괴정육현이라고 부른다. 2015. 5. 17.
(공신) 영가부원군 권율 [충장공], 정경부인 창녕조씨, 정경부인 죽산박씨 -안동권씨- 영가부원군 충장공 권율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도첨의(都僉議) 보(溥)의 9세 손으로, 할아버지는 강화부사 적(勣), 아버지는 영의정 철(轍), 어머니는 적순부위(迪順副尉) 조승현(曺承晛)의 딸이다. 이항복(李恒福)의 장인이다. 1582년(선조 1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어 전적·감찰·예조좌랑·호조정랑·전라도도사·경성판관을 지냈다. 1591년에 재차 호조정랑이 되었다가 바로 의주목사로 발탁되었으나, 이듬해 해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에 제수되어 바로 임지로 떠났다. 왜병에 의해 수도가 함락된 뒤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과 방어사 곽영(郭嶸)이 4만여 명의 군사를 모집할 때 광주목사로서 곽영의 휘하에서.. 2015. 1. 10.
(안동권씨 시조) 안동권씨 시조 태사공 권행 안동권씨 시조 태사공 권행 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원래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성씨는 김씨였다. 후삼국시대이던 서기 930년 왕건의 고려군이 견훤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고려는 이 전투로 전세에 큰 이득을 보게 되었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식읍(食邑)으로 내림과 동시에 권(權)씨 성을 내린 것이 안동 권씨의 시작이다. 권행, 김선평, 장정필 이 세 사람은 고려 창업의 공으로 ‘삼한벽상아부공신 삼중대광태사’(三韓壁上亞父功臣 三重大匡太師)를 제수받았으며 고려 성종 2년(서기 983년) 이 세 명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안동시 북문동에 삼태사묘(三太師廟)를 세웠다. 2014. 11. 22.
(공신) 안창군 권준, 정부인 여산송씨, 정부인 창녕조씨 -안동권씨- 안창군 원당 권준 조선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언경(彦卿),호는 원당(元堂)이다. 길창군 권규의 6세손이자 병조참판 권눌의 아들이다. 무과급제 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순천부사(順天府使)에 재직시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맞이하여 한산도(閒山島) 대첩(大捷)을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녹훈(錄勳)되고 안창군(安昌君)에 봉해졌다.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초배는 여산송씨로 송달기의 딸이며, 계배는 창녕조씨로 조휘원의 딸이다. 만취당 권율과는 동서지간이다. 2014. 11. 22.
(선조) 정화옹주, 동창위 권대항 -안동권씨- 정화옹주, 동창위 권대항 유명 조선국 자의대부 동창위(資義大夫 東昌尉)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兼五衛都摠府 副摠管) 권(權)공 신도비명(神道碑銘) 병서(幷序) 중훈대부(中訓大夫) 전 행 사헌부장령(前行司憲府掌令) 허목(許穆)이 짓고 전서 하였으며, 통훈대부(通訓大夫) 전 행 사간원 정언(前行司諫院正言) 조위명(趙威明)이 쓰다. 권(權)씨는 본래 신라의 후손이다. 시조인 태사(太師) 행(幸)은 고려를 섬겨 권(權)씨 성(姓)을 받았다. 자손이 존귀하고 현달하여 영도첨의 부(溥)에 이르러 그 세대가 더욱 커졌는데, 공에게 11대가 된다. 공의 이름은 대항(大恒)이고 자는 응정(應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영의정 동흥부원군(東興府院君)에 추증된 상(常)으로, 효행이 특히 소문이 나서, 5대 .. 2014. 11. 19.
(문종의 국구) 화산부원군 권전 [경혜공], 영가부부인 안동권씨, 해령부부인 해주최씨 -안동권씨- 화산부원군 경혜공 권전 (2009년 11월 22일 외후손 海州人 六友堂 鄭銘燮 참배) ?∼1441(세종 23).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아버지는 한성부윤 백종(伯宗)이며, 부인은 최씨이다. 경상도경력(慶尙道經歷)을 거쳐 지가산군사(知嘉山郡事)를 지내던 중, 1431년(세종 13)딸이 세자궁 승휘(世子宮承徽)로 간택되면서 사재감부정(司宰監副正)이 되었다. 그뒤 세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현귀(顯貴), 1434년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를 거쳐 곧 통정대부에 승자되면서 첨지중추원사, 1435년 공조참의·호조참의를 지냈다. 1437년 가선대부에 승자하면서 중추원부사, 이어 공조참판과 동지돈녕부사를 지냈고, 1439년 다시 자헌대부에 초자되면서 지중추원사가 되고, 1440년 공조판서에 발탁, 곧 중.. 2014. 11. 16.
(5) 현릉(顯陵) - 현덕왕후(顯德王后) 안동권씨 현릉(顯陵) - 현덕왕후(顯德王后) 안동권씨 - 현덕왕후는 1418년(태종 18) 화산부원군 권전의 딸로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다. 1431년(세종 13) 14세의 나이로 세자궁에 궁녀로 들어가 세자의 후궁이 되고, 이어 내명부의 종3품 품계인 양원을 하사받았다. 1437년(세종 19) 세자빈인 순빈 봉씨가 폐위되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며, 1441년(세종 23) 7월 23일 단종을 낳았다. 그러나 산후병으로 그 다음날 동궁의 자선당에서 승하하였다. 현덕왕후는 정숙한 덕과 온순한 용모로 동궁에 뽑혀 들어와 세자빈의 자리에 오르고, 단아한 성품과 효행으로 세종과 소헌왕후의 총애를 받았으나 젊은 나이에 일찍 숨을 거둔 비운의 왕비이다. 그러나 그녀의 사후는 생애보다 더욱 비극적이었다. 경기도 안산군에 안장된 .. 201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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