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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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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763

(대한민국 군인, 1212사태) 중령 김오랑 1944년 4월 5일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남역리(現 김해시 삼정동) 119번지에서 아버지 김종수와 어머니 임순이 사이에서 4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1957년 김해 소재 삼성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또래보다 1년 늦게 김해중학교(10회)에 입학했으며 김해중학교를 졸업하고 김해농업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에 합격했으나 학비 문제로 인해 등록하지 못하고 이듬해인 1965년에야 육군사관학교(25기)에 입교했다. 육사 동기로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황진하 전 국회의원 등이 있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1969년에 보병 소위로 임관해 제2보병사단 제32보병연대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첫 부임하게 되었다. 중위 진급 후 1970년 7월 맹호.. 2024. 2. 5.
(대한민국 육군, 1212사태) 병장 정선엽 대한민국 육군의 병장.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국방부 초병으로 근무하던 중 국방부에 진입하려던 반란군에게 저항하다가 전사하였다. 12·12 군사반란 과정에서 국방부를 지키다 전사한 유일한 희생자였으며, 사태 전체로 확대해 봐도 김오랑 중령(특전사령관 비서실장)과 함께 반란 진압 중 전사한 유이한 인물이다. 전역이 3개월 가량 남았던 1979년 12월 13일 전두환이 주도한 12.12 군사반란으로 '진도개 하나'가 발령되자 국방부에서 근무 중이던 군인들은 모두 경계근무에 배치되었다. 그의 선임은 전역을 앞둔 그를 배려해 보안실에 그를 배치하려고 했지만 그는 요충지인 B2 벙커에 후임 일병이 배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벙커 초병을 자원했다고 한다. 당시 50헌병중대 행정병 출신에 따르면 B2 벙커에.. 2024. 2. 5.
(대한광복군, 독립운동가, 외교관) 박영 -밀양박씨- 관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외교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건국포장)수여. 1921년 12월 20일 울산군에서 태어났다. 1944년 주오대학 재학 중 학병에 끌려가 소주에서 간부 후보생으로 훈련 받던 중 김영남, 류재영, 성동준, 최용덕, 정병훈, 김봉옥과 탈출하였다. 탈출 후 중국군 충의구국군사령부에 들어가 일본군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였고, 일본군 포로심문 및 통역관으로 활약하였다. 이들의 탈출 사실은 중국 각 신문에 보도되었다. 해방 후 귀국하여 1954년 고등전형시험 외무과에 합격하였고, 국제연합대표부 근무를 시작으로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외무부 통상경제조사과장, 홍콩, 베트남 공화국, 뉴질랜드 참사관을 거쳐 1973년 주 뉴질랜드 대리 대사, 1974년 주 로스엔젤.. 2024. 2. 4.
(순평군 파) 선산부령 이팽동, 온인 남양홍씨, 온인 하동정씨, 온인 여흥민씨 -전주이씨- 휘는 팽동(彭同), 의상령의 차남으로 1505년(연산군 11) 11월에 태어나 연도 미상 9월 19일에 별세했다. 배위는 온인 남양홍씨와 온인 하동정씨 그리고 온인 여흥민씨이며 슬하에 3남을 두었다. 2024.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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